2009년 04월 29일
Marx의 소외(alienation)
그렇다면 무엇이 노동의 소외를 구성하고 있는가? 첫째로 노동이 노동자에 외적이라는 사실, 다시 말하자면 노동이 자신의 본질적 존재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작업 내에서 그는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고, 만족 대신 불행을 느끼며, 그의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를 억누르고 정신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노동자는 그의 작업 외부에서만 자신을 느끼며, 자신의 작업에서는 자신에게 외부적인 것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일하지 않을 때에 집에 있으며, 일할 때에는 집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의 일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된 것이다. 말하자면 강제된 노동이다. 따라서 노동은 욕구의 만족이 아니며 단지 자신에 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노동의 소외적인 특징은 어떠한 물리력이나 다른 강제력이 없이는 노동이 마치 전염병처럼 회피된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인간 자신을 소외시키는 외적인 노동은 자기희생의 노동이며 억압적인 노동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이 노동자에 외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노동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고, 노동이 자신에 속하지 않으며, 그가 자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인간 상상력, 즉 인간의 뇌와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이 종교에서 개인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 -말하자면 소외되고, 신적이거나 악마적인 활동으로서 그에게 작용하는 것- 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활동은 자신의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속하며 자신의 자아에 대한 상실이다.
결과적으로 인간(노동자)은 더 이상 자신에게서 여하한 자유로운 활동을 느끼지 못한 채 먹고, 마시고, 생식활동을 하거나 기껏해야 집단장을 하고 옷을 꾸며 입는 등의 동물적 기능만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동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동물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이 동물적인 것이 된다.
먹고 마시고 생식하는 것 등은 확실히 순수하게 인간적인 기능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다른 모든 인간적 활동의 영역에서 분리시키고 그들을 유일하고 궁극적인 목적으로 변질시키는 추상 내에서, 그들은 동물이다.
Mark, K. (1959) 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 of 1844, London
# by | 2009/04/29 21:27 | tr1. 고리타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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